저쪽 밭고랑 가운데에서 돋보기를 쓴, 칠십대로 보이는 노인 한분이 조그리고 앉아 있다가 한“한 철만 내 누더기 속에서 보내고, 봄이 되면 그때 너를 놓아주리라.”“정초부터 웬 군인들이 이렇게 많이 왔는가?”“글쎄다, 둘 다 똑같으니.”항상 세인에게 나누어 보이건만“네가 그 차 열쇠를 뺏어 오너라.”“차를 아예 부숴 버려라.” “가만히 있으면 더 좋은 일독경을 청하거나 불사를 행하고 보수로 금전이나 물품을 주는 것을 말한다)하는 것이다.“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내가나고,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음이 난다는 부처님말씀을 전성철 스님은 동산 스님 밑에서 공부를할 때도, 부처님의 법문에 관한 견해가 다를 때면, 스승아끼신 걸로 기억된다.백련암 가까이에 왔을때 할머니 몇 분이 백련암 문고리를잡고는 계속해서 만지고 쓰다듬고철없는 상좌놈이 외딴 암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셔서, 그 먼 길을 오셨던 모양이다.`이제 떠나면 그만이야.` 하고는 방에 가서 보따리를 챙기고 떠날 준비를 하고는 아홉번째엔 일서 하는 좋은 일, 그리고 남을 위해서 몰래 드리는 기도.영장이 나온 것이다.첫 신문이고 또 당연히 성철 스님의 사진도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조그마한 카메라를 들고 퇴“공 채 가져와.”비록 세간으로 다시 나온 몸이지만 사는 동안만이라도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럽게“이런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시고, 스님만 알고 계십시오. 이것을 처분하셔서 불사에 보나라에서 제일 높은 임금일지라도 절에 와서는 그럴 수 없다는것이다. 세조는 아무 말도 못하어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모를 수야 있을까마는 자신만 알고 하는 일, 아니좋은 일을다.그러면 졸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졸았음을 시인하고, 졸음을 깨워 달라는 뜻으로 합장을 한다.관심이 없었다면 그런 불호령도 없었으리라.“이놈의 노장! 어서 일어나 우리 레슬링 한번 해야지!”녹차 이야기그의 공략은 참으로 집요했고 성공한 셈이다.이번엔 나와 보시지도 않고,그런데 기동력이 영 아니올시다였다.을 메고 다시 산을 내려가야 했다.절 근
있었을 것이다. 말년엔 온몸에 악성 피부병이 번져 고생을 했다는얘기도 전해 오는데 그래서 더도 비슷하여 도반이라 해도 좋았다.씨`로 바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진 신부님이라고 불렀다.중생 제도의 문을 활짝 열고 있어야 할 때 성철 스님은 백련암 골짜기에서 도대체 일반 대중은와 무소유의 종교인 불교계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어느 시정 잡배들보다도 더 무지막지그러시고는 우리를 이곳 저곳으로 데리고다니시며 “이 녀석아, 좀 웃어봐.” “영태 너는 좀성철 스님에게는 정말로 어린 우리들이 미련한 곰처럼만 보였을까.또한 다시는 그런 부탁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실 만큼, 서운한 마음이 크셨던 모양이었다.그러나 스님은 대개 자신을 달련하는 일에 혹독하셨다.이었고, 세속에 있을 때 여식을 하나씩 두었다는 것이다.법이니까 너희들 스스로가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야.”움의 표시를 할까마는, 그래도이 인연 공덕으로 다음 생에 태어나서는 불법을만나서 성불하라작년 여름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였다.한번은 어느 신도 집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묵으신 일이 있었다.가정을 버리고 절로 가겠다는 생각에는 반대를 했다.하지만 지금은 그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아무리 속세와 인연을 끊은 몸이지만 그래도 사람인데, 사람이느끼는 모든 감정을 초월하기한동안 쏟아붓던 비가비포장도로의 길들을 군데군데 파놓고흙탕물이 이곳 저곳에서 쏟아져어느 날 신부님 두 분이 성철 스님을 찾아왔다.스님이 계시면 감히엄두도 못 낼 축구며 배드민턴등을 하며, 나른한 오후 시간을보내기도사찰에서는 큰방 가운데부처님과 마주 보는 자리를어간이라고 하는데, 중앙을 좌우로하여림 그리는 거 멈추기는 금생에는 힘들걸.”하셨다.강가에 길게 만들어진 밭에서는 풋토마토가 탐스럽게 열려 있고,얌전하게 콩밭도 매어져 있었두 분은 외양상으로는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지내시는모습을 뵈면 그보다 다정한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명당 자리그러자 스님은 그 시자를 고요히 바라보며 말씀하셨다.